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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30일
![]() 1871; Oil on canvas, 144.3 x 162.5 cm; Musée d'Orsay, Paris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그림이죠? 영화 [미스터 빈]에 나왔던 그림입니다.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의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 Portrait of the Painter's Mother]입니다. 타이틀의 이름이 긴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휘슬러는 미국인으로, 21세 때에 파리에 가서 [Twelve Etchings fom Nature(The French Set)](1858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 후, 런던으로 활동무대를 옮겨서, [At the Piano](1860년), [Symphony in White No.1 : The White Girl](1863년) 등을 차례로 발표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미스터 빈이 이 그림을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져갔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위트가 넘치면서 세련된 유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대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동양에 간 적은 없지만, 일본의 판화와 중국의 청과 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도자기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 한, 그는 언제나 그림의 제목을 붙이는데 있어서, 현대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제목들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작품들을 전시할 때, 최초로 일정한 간격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지금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사각의 화폭 안에 조용히 단정한 모습으로 어머니가 앉아 있습니다. 검은 옻칠을 연상시키는 Black과 회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어 가는 미묘한 색의 변화. 그리고, 직선과 곡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화면구성.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아담한 어머니의 옆 모습. 어머니의 표정과 모습에서 세월의 깊이가 뚝뚝 묻어나는 듯 합니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비슷한 체형에 얼굴은 더 늙어셨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 .. . 그가 정면이 아닌 어머니를 옆으로 앉게 한 것만으로도 그의 뛰어난 회화적 감각을 알 수 있습니다. 정면의 모습이었다면, 오히려 어머니의 경직된 모습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 이 그림이 주는 온화함과 볼륨감은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림에 과도한 이야기를 내포시키는 당시의 풍조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림에 내포된 이야기가 아니라, 색의 사용과 구도였습니다. 즉, 휘슬러에게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렸는가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그린 이유는 어머니를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프로테스탄트였던 어머니가 입고 있었던 새까만 드레스때문이었습니다. 검은 색과 회색에서 흰색으로 변화는 색의 미묘한 차이 등에 의해서 시공을 초월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지게 되었습니다. 네 멋대로 지껄임 5월 8일은 어버이의 날입니다. 어버이의 날의 유래를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인 1908년 5월 10일 미국의 버지니아주에 사는 안나 자이비스라는 소녀가 어머니를 기리면서 그 제사날에 생전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흰 카네이션을 참석자들에게 준 것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후, 안나는 어머니에게 효도하자는 운동을 벌여서, 1910년 버지니아주를 시작으로 해서 1914년에는 드디어 미국의 기념일로 제정되었고, 이것이 전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버이날의 유래라고 알려진 이 이야기는 사실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전체는 어떤 것일까? 다시 한번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봅시다. 안나 자이비스의 어머니 앤 자이비스는 단순한 가정주부가 아닌 사회운동가였습니다. 그녀는 1852년 목사와 결혼한 후, 1858년 [Mothers' Day Work Club]이라는 단체를 결성합니다. 이 단체는 병자들을 위해서 모금활동을 하거나 예방을 위해서 우유와 식품에 대한 검사를 하는 등의 공공위생을 위해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남북전쟁 때에는 중립을 선언하고, 남북 양쪽의 부상당한 병사들을 간호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남북의 병사들과 시민들을 초대해서 전쟁으로 생긴 서로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없애기 위해서 [Mother's Friendship Day]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안나 자이비스라는 딸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녀에게는 10명의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8명을 전쟁과 병으로 잃었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자식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영향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1872년 리퍼블릭 찬가를 지은 줄리어 워드 하우가 평화를 기원하면서 [Mother's Day for Peace]를 주장하게 된 것이 [어버이날]의 기원입니다. 줄리어 하우가 제안한 이후로, 국가적인 행사는 아니었지만, 매년 6월 2일에 [Mother's Day for Peace]는 미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회운동으로 행사가 벌어지게 되면서, 앤 자이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고, 안나는 자신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모든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의 날]의 제정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날]의 의미가 뒤죽박죽이 된 것은 정치가와 상업주의 때문이었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날]을 어느 순간부터 [가족을 위해서 노력하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날]로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물질적인 선물로 표시하게 만든 것입니다. 1923년 어머니의 날의 행사에서 안나는 모든 평화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상징이었던 흰 카네이션을 한 송이에 당시로는 거액이었던 1달러에 팔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에 절망과 분노를 느껴서 행사의 폐지를 위해 재판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안나가 패하고, [어머니의 날]의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상업화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나는 내 자신이 만든 이 날이 상업화되는 것을 막는 것으로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는 최후의 말을 남겼습니다. [어버이의 날]에는 이런 슬픔과 왜곡이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버이의 날]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가족애가 아닌 인류애의 날이었습니다. 원래의 [어버이 날]의 의미를 되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실제로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로 이 날에 핵폐기 등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침략과 약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어버이의 날]에는 가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인류애]로서의 [어버이의 날]의 재출발을 기대해 봅니다. |